1. 고대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노예였던 유대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이후 에리코 전투에서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학살하여 세워졌다. 하스모니안 왕조가 세워져 유대인들은 독립을 누리고 있었지만 내분으로 로마에게 함락되고 만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점령에 반항하며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그로부터 거의 2000년 이후, 오스만제국과 전쟁중이던 영국은 아랍인이 국가를 세우는 것을 약속하는 맥마흔 선언과 유대인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약속하는 밸푸어 선언을 동시에 함으로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핀다. 또한 영국은 프랑스와 (중동의 일부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각각의 나라가 지배하자는 내용의)사익스 피코 밀약을 맺었다. 하지만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가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공산당 기관지에 이 밀약을 공개해버렸다. 팔레스타인에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가 일어났지만 영국은 이를 무력으로 잔혹하게 탄압했다. 영국의 폭격으로 50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고, 약 1만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던 중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고 나치는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다. 일부 유대인 지도자들은 여론을 움직이고 연합국의 도움을 이끌어내어 희생을 막고자 하였지만 시오니스트들은 조용했다. 하물며 영국과 미국 정부의 유대인 구조 노력도 거부했다. 예시로 시오니즘의 주요 대변자였던 랍비 스테픈 와이스는 ‘유럽 유대인 구조 법인’에 반대했다. 시오니스트들은 세계 동정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방관하고 전후에는 이에 대해 자신들의 처지를 주장함으로써 유대인 국가를 세우고자 한 것이다.
여담으로, 나치는 집시족 500만명에서 1000만명, 소련인 2000만명, 장애인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도 학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독정부는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관리만 처벌하고 동부전선의 학살자들은 그대로 기용했으며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동독정부는 전쟁범죄에 관여한 관리 모두 처벌)
미국의 지지를 받는 시오니스트들은 마음 놓고 팔레스타인 마을을 파괴하고 살해하기 시작했다. ‘데이르 야신 마을의 학살사건’에서는 하루동안 한 마을에서 250명이 사망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은 수립하자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은 이를 승인하고 미국과의 마찰을 원치 않던 소련의 스탈린도 승인했다. 이에 분노한 아랍국가연합은 1차 중동전쟁을 일으켰지만 압도적인 미국의 무기들로 인해 패배한다. 이와같은 전쟁은 4차까지 이어진다. 4차 중동전쟁에서는 소련의 지원으로 일방적인 승리없이 끝났지만 대부분의 전쟁에서는 아랍국가연합이 패배하였다.
현재는 계속되는 인티파다에도 불구하고 돌과 화염병으로 저항하는 민중들에게 총과 최루탄을 발포하고 있으며 백린탄 등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을 계속해서 탄압하고 있다.
2. 영국이 초래한 이 상황은 이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두 나라의 공존이란 애초에 말이 안 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팔레스타인 분쟁’이라고 부르는 것도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라다. 팔레스타인은 마땅히 팔레스타인인들의 영토이고 유대인의 태도는 적반하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많은 부분에서 위의 생각에 동감한다.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고 일본인들을 이주시킬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그렇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으며 의열단은 자살 폭탄을, 한인 애국단은 일본의 장교들을 사살하고 청산리에서는 김좌진과 홍범도가 일본인들을 무찔렀다. 이때, 평화를 부르짖던 자들은 ‘타협적 민족주의 세력’. 즉 민족의 배신자요 친일파였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상황은 우리가 겪었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 서방의 언론들은 하마스의 공격을 ‘테러’로 묘사하며 극단적으로 편파보도를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를 테러리즘(terrorism)이 아닌 게릴라 군사활동으로 생각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무단점거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공격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공습을 하는 목적은 테러 보복, 하마스의 악화가 아닌 학살로 인한 인구조절로 보기도 한다. 팔레스타인의 출산율은 1천 명당 32.8명이고 이스라엘 출산율은 1천 명당 26.2명이기 때문에 언젠간 인구수로 보았을 때 역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지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학살을 방지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는 지리적 정치적으로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대사를 추방했으며 벨기에 정부는 이스라엘에 무기 수출을 금지했고 소비에트 연방과 바르샤바 동맹은 중동전쟁에 대한 항의로 이스라엘과 단교했었다. 북한은 현재 공식석상에서 가자지구 학살에 대해 이스라엘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각국의 시민단체들도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스 항만 노동자들과 남아공의 운송 연맹 노조, 오스트레일리아 해양 노조는 이스라엘 선박을 거부했고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촉구하는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적도 있었다.
한편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1000여 명의 시민이 가자 침공 반대 시위를 벌였고 병역 거부 젊은이들은 동영상을 만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도 하였으며 공군조종사들의 공습명령 거부, 유대교 탈퇴 등 많은 움직임이 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반성이 필요하고 주변 열강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불가능에 도전해 온 것이 인류의 역사라면, 평화적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팔레스타인 문제도 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아 팔레스타인 1,2 원혜진 지음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여우고개
잔인한 이스라엘 랄프 쇤만 지음 | 이광조 옮김 | 미세기
인티파다:시온주의 미국과 팔레스타인 저항 필 마셜 지음 | 이정구 옮김 |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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