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생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셔 주 케임브리지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역시 경제학자였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도덕과학 강의를 하였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지역의 사회개혁가였다. 케인스는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여동생과 남동생이 있었다. 케인스의 부모는 자식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고 주의도 많이 기울였다고 한다. 그들은 자식들이 언제나 돌아와서 쉴 수 있도록 평생을 같은 집에서 살았다. 케인스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케인즈가 장학금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케인즈가 젊을 때에 재정적 지원도 해주었다. 케인스의 어머니는 자신의 취미를 아이들에게 주었다. 케인즈는 양성애자였다.
케인스는 유년기 시절 교육을 주로 집과 학교에서 받았다. 학교의 교사는 케인스는 똑똑하지만 때때로 주의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며 결정력이 부족한 아이라 평가하였다. 케인스는 유년기 때에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장기 결석을 하곤 했다.
케인스는 이튼 칼리지에 입학한다. 1904년 5월 그는 수학에서 일등으로 학사학위를 받게 된다. 그 후 2년간 가족이나 친구들과 휴일을 보내는 대신에 대학에 나가는 것에 충실하였다. 그는 논쟁에 참여하였으며 철학을 공부했고 졸업생신분으로 경제학 강의를 듣고는 했다. 그는 1905년엔 케임브리지 졸업시험(Tripos)을, 1906년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1920년대~1930년대에 케인스는 잇따라 확률론(1921), 화폐개혁론(1923) 등을 발간하며 자신의 이론을 정립시켜 나간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영국 재무성에서 일했으며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본래 가상의 국제 공용통화인 방코르를 사용하여 그것을 기축통화로 삼는 새로운 국제통화체계를 만들고자 하였으나, 그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본위제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만들어진 것. 1946년 4월 21일 사망했다.
2. 경제학적 업적
케인스의 처방을 간단히 말하면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지면 정부가 개입해 수요를 창출시켜 해결하라는 것. 케인스는 ‘빈 병을 땅에다 파묻고 정부가 사람을 고용해 빈 병을 파내라’ 라는 말로 자신의 이론을 설명했다. 말하자면 정부가 필요없는 행동을 해서라도 수요를 창출해내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이전까지 경제학계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를 인용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장기적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믿었기에 케인스의 이론은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이야 불황이라고 하면 정부가 나서서 무언가 해야한다는 생각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1920년대의 경제학자들에게 이런 생각은 금기와도 같았다. 케인스 평생의 맞수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학자들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터이니 힘든 시간이지만 버텨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업자가 길거리에 나앉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풍전등화 같았던 시기에 이런 주장은 경제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과 정치인에게 헛소리 그 이상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등장한 케인즈의 이론은 인간이 그저 시장에 지배받는 동물이 아니라, 스스로 나아가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입증하는 일종의 빛과도 같았다고 당대의 젊은이들은 받아들였다. 게다가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시행한 뉴딜 정책이 케인스의 이론이 어느 정도는 맞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후 1970년대 오일 쇼크가 일어날 때까지 케인스의 이론은 세계 각국 경제 정책의 기본 지침이 된다.
3. 뉴딜정책의 의미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된 경제 불황이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당시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필사적인 방지 대책에도 물가는 폭락하여 GNP를 1932년 당시 1929년의 56%로 떨어뜨리고 1,300만명의 실업자를 양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경제 구조와 관행을 개혁하는 정책이다. 쉽게 말하면 국가에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진행해 일자리를 양산하고 그로인해 통화가 시장에서 돌게 되어 다시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사실에 기초한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응급처치.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부상했던 시기와 겹쳐 케인즈주의의 영향으로 나온 정책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케인즈주의에 입각해 시작한 정책은 아니다. 다만, 케인즈의 이론과 뉴딜정책이 (노동법, 반독점, 사회보장제도 등) 상당부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정책의 집행과정에서 케인즈가 자문을 해주기도 했고, 정책을 추진하는 관료들 가운데서도 케인지언들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케인즈주의가 어느정도는 영향을 미쳤다고는 볼 수 있겠다. 위에서 보아서 알 수 있듯이 공업, 농업, 상업, 금융 등 경제 전분야에 있어서 대대적인 정책을 펼쳐었고, 게다가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임으로써, 인위적으로 수요를 만들어냄으로써 묶여있던 자금이 공공사업에 투입되고, 이를 통해 한계는 있었지만 대공황으로 무너져내리던 산업을 회생시켰다.
정부 위주의 경제 개입의 단점
1. 유효수요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통화가 과잉공급되고 이는 곧 인플레로 이어진다.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이번에는 다시 긴축예산이 편성되고 정부의 정책이 금융 긴축 쪽으로 돌아서면 경기가 곧바로 붕괴되어버린다.
2. 불완전한 지식과 정보, 규제 수단의 불완전성, 이해 집단들의 정치적 압력, 관료의 부정 부패 등의 이유로 정부의 시장 개입이 오히려 비효율성을 초래할 수도 있다.
느낀점
“어떻게 현대 세계에 아무런 적용을 할 수도, 흥미를 유발할 수도 없으며 과학적으로까지 틀린, 한물간 교과서를 성경으로 떠받들어 비판을 "초월"하려는 독트린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떻게 물고기 대신 흙탕물을 선호하는 신앙, 천박하고 거지같은(boorish) 프롤레타리아트 계층을 문제가 뭐건 간에 성공했으며 인류의 진보의 씨앗을 분명 잉태하고 있는 부르주아와 지식인들보다 위로 놓고 우러러보라는, 신앙을 받아들이란 말인가?
우리가 설령 종교가 필요할 지더라도 이걸 어떻게 현탁한 쓰레기(turbid rubbish)같은 빨간 책 속에서 찾으란 말인가? 서유럽에서 교육받고 현명하며, 똑똑한 자들이 이 책에서 이상을 찾는 것은 그의 가치관에 뭔가 정신적으로 이상하고 끔찍한 문제가 생기지 않은 이상 힘들다.
” -Keynes, John Maynard (1931), 자본론을 읽고.
애덤 스미스에 버금가는 인물이라고 알고 있어 조사해보았지만 사실 케인즈에 상당히 실망했다. 그가 수정 자본주의의 기초를 만든 것은 맞지만 그것은 ‘평등’과 같은 보편적이고 성스러운 가치에서 나온 것이 아닌 그저 경제 구조의 이해에서 나왔다. 또한 그가 도대체 왜 노동자를 ‘거지같은’이라고 표현할 만큼 증오하는지 납득이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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