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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이야기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관해 from 줌인 러시아

by Hansol2001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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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 열차 역시 1등급~3등급으로 객차가 나뉜다. 1등급 객차룩스(Lux)’ 1층 침대인 2 1실의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며 전용 콘센트에 TV, 승무원 호출 벨까지 갖춘 고급 좌석이다.

2등석인쿠페’(Kupe) 4 1실로 낮에는 1층 침대에서 앉아서 생활하다 밤에는 두 명이 위로 올라가 취침하는 구조로 역시 독립된 공간을 제공한다. 여기서 혼자 1등석이나 2등석을 예약할 경우,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밀폐된 공간에서 계속 지내야 할 수 있다.

3등석인  플라츠카르타(Plazkart)’가 바로시베리아 선발대에 나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모습이다. 한 블록에 6인이 함께 생활하지만 오픈된 공간이라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이용했던 여행객들은 연인이나 부부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플라츠카르타를 추천하곤 한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기차를 타는 만큼 같은 처지의 여행객이나 현지인들과도 계속 어울리게 된다.

 

18881018일 흑해 크림반도에서 휴가를 끝내고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가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와 그 일가를 태운 기차가 탈선하여 전복된다. 현장에서 20명이 사망한 큰 참사였다. 황제는 이때 자신의 심기를 거스른 한 인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황제의 부관들에게 기차를 출발시켜서는 안된다고 대들고 있었다. 이유는 두가지인데, 우선 대동한 교통부 장관이 탄 차량칸 바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이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 때문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황실 기차는 증기기관차 2대가 끌고 있었는데 이 두 기관차를 모두 가동시켜 속도를 내다가는 탈선의 위험이 있다는 것. 황제의 참모와 교통부 장관은 이 관리를 반미치광이 취급하며 설득 반 위협 반으로 상황을 무마한 다음 기차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휴가에서 돌아가는 길에 사고가 일어나고 만 것이다. 그 관리는 4년 뒤인 1892년 교통부 장관으로 발탁된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의 주역 세르게이 비테이다. 우연하게 황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당시 러시아 황제에게는 세 가지 주요 과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쇠망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파이를 둘러싼 열강들의 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는 것이고, 둘째는 낙후한 극동시베리아를 개발하는 것이며, 셋째는 철강을 비롯한 제조업 발전을 통해 러시아를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발돋움시키는 것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바로 세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막힌 포석이었다.

 

(사진: 바이칼 구간)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건설과정 중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바이칼 호수였다. 당시 기술로는 그 폭이 최대 80km에 이르는 이 광대한 호수를 가로지를 철교를 놓을 수 없었고, 따라서 유일한 방법은 바이칼 호수 연안을 돌아가는 환상철교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공사는 이미 1899년에 시작되었지만 좀처럼 진도를 내지 못했다. 러시아 철도청은 영국으로부터 3470톤급 증기 쇄빙선을 674만 루블, 즉 지금 기준으로는 약 23000만 달러(2762억 원)에 구입했다. 19004월 첫 운항기록에 따르면 500명의 승객, 167마리의 말, 증기기관차 2대과 수송용 열차 3대와 1000파운드의 화물을 싣고 바이칼 호수를 건넜다. 문제는 호수가 모두 얼어버리는 겨울이었는데, 바이칼 호수를 뒤덮은 두꺼운 얼음 위로 약 45km의 임시 철로를 깔았다. 그러나 증기기관으로 기차를 움직이면 얼음이 깨질 위험이 있었기에 철로 위에 얌ㅈ먼히 놓인 기차를 한량 씩 따로 떼어내 말들이 그것을 하나씩 끌어 옮겼다. 그러나 화물과 승객이 늘어나고 더군다나 극동 지역에서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군수품을 신속히 운반하는 것이 러시아에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하루에 단 13대의 기차만 통과시키는 바이칼 도하선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결국 러시아 철도청은 미적거리던 바이칼환상철교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260km 길이의 바이칼 연안 구간은 세계 철도 역사상 가장 힘든 공사구역으로 남아있었다. 평균 공사비의 약 20, 공사기간은 무려 6년에 이르렀다. 많은 역사학자가 만약 바이칼 환상철교 공사가 조금만 더 일찍 끝났더라면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러일전쟁, 적백내전이 있을 때 파괴되고 혹한이 있을때마다 훼손되었지만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고 있다. 1905뇬 연간 185만 명이었던 승객은 현재 15000만명을 넘겼고, 연간 1억 톤의 화물을 실어 나르며 명실공히 유럽과 아시아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는 것은 일생에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은 꿈의 여행으로 많은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다. 철도 건설에 담긴 러시아인들의 꿈과 도전, 고난과 희생 등을 뒤로한 채 오늘도 유유히 달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는 수많은 굴곡을 거치며 이어져온 러시아 역사와 꼭 닮아있다.

 

출처:

https://blog.hyundai-rotem.co.kr/368 현대로템 블로그 끝없이 달리는 20대 청춘 버킷리스트 여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

https://ko.wikipedia.org/wiki/%ED%99%98%EB%B0%94%EC%9D%B4%EC%B9%BC_%EC%B2%A0%EB%8F%84 환바이칼철도 위키백과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683 그린포스트 코리아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정점은 바이칼 호수다>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50 아틀라스 뉴스

https://yandex.ru/images/search?from=tabbar&text=%D1%82%D1%80%D0%B0%D0%BD%D1%81%D1%81%D0%B8%D0%B1%D0%B8%D1%80%D1%81%D0%BA%D0%B0%D1%8F%20%D0%BC%D0%B0%D0%B3%D0%B8%D1%81%D1%82%D1%80%D0%B0%D0%BB%D1%8C Yandex, транссибирская магистрал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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